Monday, June 26, 2017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배우고, 나이가 들어 간다.
일반적으로 20대 초반까지는 부모 밑에서 보호 받으며 교육을 받고,
20대 후반에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생활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태어나
완전한 하나의 가족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삶을 영위하며 나이가 들어 간다.
이러한 모습은 누구나 맞는 평범한 삶 같지만,
여러 사정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려운 순간을 맞아 일생을 홀로 어려움을 맞는 삶도
너무나 많이 본다.

어떠한 삶이라도  자식들의 후원이 끝나는 이순의 나이가 되면은,
젊음과는 다른 신체적인 변화와 죽음 쪽에 가까와 지고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알게모르게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다양한 형태로  생각 속으로 들어 와
앉는다.

이러한 물음에 답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겠는가?
책 속으로, 친구 선배와의 대화 속으로, ---
결과적으로 본 나는  종교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것 같다.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때문에 접한 성당에서 결혼한지 15여년만인 2000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세례를 받으며 시작한 성경공부가  이순의 나이 중반을 맞아 부딪히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다는 내 마음을 평화스럽게 만들어 준다.

크나 큰 마음의 고요를 가져다 줌을  마음으로 느낀다.  좋다. 편한 하다.

내가 또 만난 행운이라면,  수도원 출신으로 신학 박사과정까지 공부하며 영성공부를 하신
신부님을 주임신부로  만난 점이다. 오늘날 카톨릭의 영성신학은 미국이 주되단다.
여기서 공부하시고  캐톨릭 양대 수도원중 하나인 프란시스코 신학의 중요한 한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을 하셨으니 내가 제대로 신부님을 만나 캐톨릭 속의 신학 흐름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돼어서 참 좋다.

캐톨릭에는 많은 유형의 수도원이 있으며  역사 또한 매우 깊고 넓다.
또한 성경,성전과 교도권(동방교회는 성교의)이 기둥이며 바탕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도미니코 수도원과 프란시스코수도원이 대표적인 신학이론을
이끌고, 특히 도미니코 수도원이 교부로 삼은 토마스아퀴나스 성인의 신학과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교부로 삼은 보나벤투라 성인, 요한 둔스 스코투스 성인의 신학이 쌍벽을 이루며
내놓는 신학흐름을 교도권이 있는 로마교황청에서 결정하면  캐톨릭의 공식 입장이 되는 것이 서방캐톨릭이다.  토마스 마퀴나스의 신학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루터와 캘빈도 이 성인의 신학 영향을 많이 받아, 오늘날 개신교의 모습이 되었다.

12세기 무렵에 지식인층을 선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그리스도교가 되고자, 기존에 받아들였던
플라톤 철학에 보태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세계방식을 따라 신학을 발전 시켰고,
200년경 북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출신 변호사 테르 툴리아누스가 법이론의 용어를 빌어 세운 그리스도의 삼위일체론은   모든 수도원이 같이 기초바탕으로 삼았다.

 구약과 신약을 거처 오는 역사속에서, 특히 양 수도원의 교부들신학이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음으로
이들의 생각하는  우선 순위를 보면서,
신학의 차이를 보면서,
나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의 삶의 방법을 정하고저 한다.

설교를 제일순위로 삼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토마스아퀴나스의 신학
관계를 제일순위로 삼는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보나벤투라, 요한 둔스 스코투스 신학

차이의 한 예로,
성전의   안에서만 하느님이 계시다는  도미니코 수도원
성전 밖  자연에도 하느님이 계시다는  프란시스코 수도원

지금까지 공부한  나의 느낌으로 정리하는 나의 생각은,

1. 제한된 시간 공간에서는 도미니코 생각에 더 간다.
    따라서 젊은 시절에는 이래야 한다고 기울어 진다.
    그렇다고 나이들어 평생을 그렇게 살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여유를 부릴줄 아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프란시스코에 더 기운다.
2.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인 국가로 확대 해보자.
   제한된 자원으로 발전를 하려면, 한국같이 경제개발을 하려면,
   허리띠를 매는 도미니코에 기운다. 이것 저것 다 챙기면, 배는 산으로 가고,
   필리핀꼴 된다.필리핀은 분명히 한국보다 나은 때가 있었다.
   국가도 언제나 도미니코 입장이면 안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
  그래서 안타깝다.
   지정학적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쌓인 한국이, 도미니코 생각으로
  가난을 이겼지만, 그기에서 쌓인 불합리를 풀어 줄 방법을 잘 이끌어야 할 현 한국은
  도미니코 생각을 유지해야할 방법을 포기하거나, 무시하면, 영원히 중국의 그늘 속으로 들어   간다.

해서, 이순의 중반에 들어 선  나는 정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 끌 길은,
프란시스코의 관계론적인 삼위일체론에 뿌리를 두고,
풍요로운 절대자유자인 하느님으로 바라보면서,
육화의 겸손괴  수난의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신앙안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한 피조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주님의 평화를 마음에 품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 가겠다.

2017년  6월  25일  저녁 10시










1 comment:

  1.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는 신앙"으로 무장한 영구가 부럽다. 그런 삶으로 매일매일 기쁨이 넘치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항상 승리하는 영구이길 확신한다! 좋은 신앙고백의 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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