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성사
천주교에는 잔치의 형식을 빌어 하느님과 만나는 성스러운 일, 예식을 미사라 한다.
이 성스러운 일은 일곱가지의 유형이 있어, 이를 칠성사라 한다. 이 칠성사중에 고해성사,고백성사란 예식이 있다.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순간이다. 이 나이에 믿으라면 믿습니까? 가 내심에 항상 존제하는 받아드리기 어려운, 풀리지 않은 문제였다. 고백성사을 본 것은 지금까지 딱 두번.
울뜨레아란 프로그램이 있어, 그기에 참가하는 도중에 있는 고백성사에서 내 마음은 한정된 참가자 중에 나 혼자 빠질수 없어 형식적으로 위기를 참가하여 모변(?)한적이고, 진짜로
성당에서 있는 고백성사에 줄서서 신부님과 만나는 순간 퇴짜맞은 것이 다다.
누군가가 묻는다. 천주교에는 고백성사란 것이 있지요? 해 보셨어요?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까지는 잘 안와 안해요.라고 얼머부렸다.
천주교 영성을 전통으로 공부하신 프란시스코 수도원 출신의 주임신부님을 만나, 일년이 넘게
교회사로부터 시작한 영성공부는 참으로 귀한 영적성숙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중에 아빌라데레사의 책중 '영혼의 성'은 나의 눈을 한층 뜨게 영향을 주었다.
일곱궁방(단계란 표현을 성녀는 궁방으로 씀)은,
첫째궁방 - 의지.겸손과 기도로 출발.
제이궁방 - 이성(논리세계)으로 극복.
제삼궁방 - 이성으로 해결안되는 메마름느낌이 옴
제사궁방 - 상상이란 도구로 활로를 찾음.
제오궁방 - 사랑으로 극복.
제육궁방 - 하느님나라로 들어가는 여러 예를 통해 설명.
제칠궁방 - 하느님나라.
제오궁방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제세계을 밑바탕으로 하는 논리란 이세상의 도구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제육궁방은 마음으로는 알겠는데 표현을 내 수즌으로는 할 수가 없다.
다만 마음으로만 느끼고 peace of mind을 느낄 수 밖에---
지난 육개월은 귀중한 피정의 시간이었다고 마음을 추수린다.
아직은 완잔히 풀린 것은 아니고 그냥 바라보는 상태이지만, 지난 수요일에 맞은 첫 쉬는 시간에 저녁미사 전에 고백성서를 신부님께 요청했었다.
요사히는 신부님만 뵈면 눈물이 앞선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신부님께 무릎굽고 눈물로 고백성사를 했디.. 마음이부모앞의 어린애같이 편한하다.
왜 이래졌지. 난 지금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세례이후 18년간의 성경을 접하는 순간은, 언제나 마음은 바다건너 한국에서의 생각세계와 비교하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차이를 느끼면서 성경공부를 해 왔다.
이제는 이러한 비교의 의미가 없어지는, 의미가 없는, 그럴수 밖에 없었구나하는 마음이다.
새상사는 것이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