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over때문에 2시간정도를 San Diego에서 기다리다 Seattle공항으로 날았다. 등산 가방에는 등산용 짝대기의 뾰쭉한 금속이 붙어있어 기내로 hand carry하지 않고 그냥 check-in을 하였기에 짐을 끌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아주 좋았다.
Seattle 공항에서 경영72동기 창동이를 만나 (North Carolina에서 software developer로 일하는 professional) 창동이가 카나다 국경쪽으로 렌트카를 밟았다. 미국 면세점에 들려 위스키 한병을 산 후 국경선에 도착하니 카나다 국경수비대 직원이 여러가지 질문을 한 후 들어가라는 허락을 받았다. 옛날에 카나다로 운전해 갔을 때는 거의 물어보는 것이 없더니, 요사이는 물어보는 질문사항들이 엄청 많아졌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호텔 각자의 방에 check-in한 후 카나다 뱅쿠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등산회 회장으로 지내는 경영 72 제국이가 내 방으로 찾아와서 산에서 2박을 하는데 필요한 음식물들을 수퍼마켓에서 구입한 후 각자의 등산가방에 양이 엄청많은 전투식량으로 분배해 주었다. 양념갈비와 돼지고기는 상하지 않도록 내 방의 냉동실에 넣어두고, 내일 아침에 잊지말고 꼭 챙겨와야된다고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저녁은 부근의 한국식당에서 순대국, 파전, 그리고 소수 2병을 훌딱치웠지요. 사실 같은 경영72이지만 43년 전 캠퍼스에서 몇번 보았던 것 이외에는 서로를 전혀 모르는 그런 사이였는데, 만나보니까 금방 옛날로 모두 돌아가게 되는 그런 행운이 우리 삼총사에게 내려졌었습다. 제국이에게 무슨 산상의 부페음식점을 차릴려고 하느냐면서 흉보는 것도 물론 소생은 잊지않고 표현을 하였지요. 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냥 지나갈 간헐단식의 마음자세가 되어있다는 허풍도 날리면서 말입니다. 이번 back packing에는 여흥시간이 너무 없다고 소생이 두털거리며 바람을 잡아서 제1차 노래방에서 1시간을 즐겼습니다!
6/18/2016 (토요일)
제국이가 아침 일찍 호텔로 우리를 찾아왔다. 완전군장을 하였더니, 창동이 18킬로, 제국이 20킬로, 소생도 20킬로 정도의 묵직한 등산가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창동이와 나는 사전에 훈련을 해 왔기에 무게가 큰 문제는 되지않았다. 제국이는 이런 backpacking을 워낙 많이해 본 사람이라서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다.
주차장을 향해 창동이가 운전해가면서 경치를 보았더니 바다와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야말로 끝내주는 자연풍광이었습니다. 주차를 하고 산에 들어갈려는데, park ranger 2명이 캠핑장 예약은 하였느냐고 확인을 해 주었다. 당연히 야무진 창동이 모든 것을 pay하고 훨씬 전에 예약을 해 두었지요! 창동이는 등산이라고는 난생 처음하는 것인데도 훈련과 그의 깡다구로 전혀 문제없이 텐트칠 장소까지 잘 올라갔습니다. 소생도 72 산악회와 경영 72 산우회에서 받아온 훈련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야영은 창동이나 소생 모두 처음 해 보는 것이지요.
사실 짐을 지고 올라오는 7.5킬로미터의 등산로는 너무 너무 잘 개발되어 있더군요! 텐트장 옆에는 개울물이 힘차게 내려가서 그 물로 중력정수를 (filtering water using the gravity)하면 되었고, 공동취사장 옆에 화장실도 깨끗하게 마련이 되어있었습니다. 화장실에는 냄새도 거의 나지않았는데, 큰 것을 보고는 반드시 변기 옆에 부착되어있는 발판을 5번씩 발로 눌러주어라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그 화장실에는 대변과 소변을 분리해서 물기가 없는 대변을 벌레들에게 먹여 퇴비로 (composting) 사용한다는군요. 저녁에는 가스버너로 제국이 돼지고기를 바베큐하였는데, 맛이 짱이었습니다. 공동취사장이라서 청소를 잘 해주어야 하는데, 수돗물이 없으니까 음식찌꺼지는 모두 비닐봉지에 모아서 하산할 때 우리가 지고 갈 수 있도록 조치하고 식기들을 잘 씯어야 하는데 창동이가 그 책임을 맏았습니다. 부억일에는 소생이 전혀 쓸모없어서 그냥 공짜로 먹기만 하였지요. 대신에 소생은 텐트 속의 잠자리 꾸리는 책임자이었습니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공동 취사장으로 젊은 남녀 한쌍이 들어오더군요! 그 때 창 밝을 보니 눈발이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제국이가 걱정을 하기에 소생은 그 젊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닥터 지바고”의 로멘틱한 분위기를 연상시켜 주어서 좋지않느냐고 물었지요. 여자는 나이가 어려서 그 영화를 모르는데, 다행히 남자는 알고있더군요.
텐트로 돌아가 보았더니, 눈의 무게로 인해 우리 텐트에 조금의 손상이 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쌓인 눈을 치우고 (물론 모두 판쵸를 입은 상태에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위스키 한 병을 셋이서 거의 치워서 그런지 두 친구는 코를 골면서 잠을 잤답니다. 그런데 소생은 눈만 감고 있었지 사실은 뜬눈으로 꼬빡 밤을 새웠답니다. 소변이 보고 싶었지만 등산화 신기도 힘들고 또 판쵸를 입을 공간도 없고 해서 두 친구가 일어날 새벽 5시까지 그냥 참고 침낭에 누워있었지요.
6/19/2016 (일요일)
밤새 내리던 비가 다행히 새벽이 되니 멎었답니다. 다시 공동 취사장으로 가서 음식꾸러미를 공중에서 내려 맛있는 아침식사를 즐겼지요. 그 곳은 black bear가 나올 수 있으니까 음식물 냄새를 풍기지 않고 또 그 녀석들에게 음식물을 갈취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취사장 옆에 굵은 철사로 음식물을 공중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시설물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제국이가 오늘은 등산이 좀 빡쎈 날이될 것이여 하더군요. 산의 아랫쪽에는 비가 왔지만 윗쪽에는 눈이 왔기에 제국이가 가지고 온 아이젠을 착용하고 (물론 짐들은 모두 텐트 속에 그대로 둔 가벼운 등산이지요)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날자가 6월 중순인데, 아뿔사 올라갈수록 쌓여있는 눈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소생 hiking pole의 반이 모두 눈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리더군요. 두개의 목표물을 정하고 공격을 하였는데, 위험때문에 첫번째 목표물은 중간에서 포기하기로 한 후 제2의 목표물로 향하였습니다. 2 그룹의 사람들도 제2의 목표물로 향하였기에, 그 사람들이 먼저 개발해 둔 발자욱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작전전략이었지요. 제2의 목표물은 black tusk라는 곳이었는데, 가까에 엄청난 “남근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볼려고 하였지만 한 맴버의 고소공포증과 너무 등산을 심하게 하면 이 조직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엄포에 눌려서 제2의 목표물 또 중간에서 포기하였답니다.
하산 길 역시 적설량이 많아서 어떤 구간은 걷는 것 보다는 그냥 sliding하면서 내려오는 것이 더 쉬웠답니다. 새벽 5시에 모두 기상해서 빨리 서둘렀더니 하산길은 아주 여유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개울가에 앉아 판쵸를 깔아놓고 삼양라면 4개를 요리해서 또 맛있는 점심식사를 즐겼지요. 소생의 경우는 집에서 라면을 전혀 먹지않아서 아마도 삼양라면 먹어본 것이 20년은 지났을 것 같습니다. 우째 불량식품들은 맛이 그렇게도 좋은지! ㅋㅋ

텐트를 친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이 녹은 물로 만들러진 Garibali Lake라는 곳도 들렸는데, 세상에 호수의 물 색갈이 완전 샤파이어 같은 청옥색이더군요! 그렇게 찬 호수에도 자연산 송어는 서식한다고 들었습니다. 텐트로 돌아와서는 불고기로 또 맛있는 저녁을 즐기고 창동이 설거지하고 소생은 free rider로 지났습니다! 사실 수퍼에 가서 먹을 음식들을 너무 많이 제국이 챙긴다고 흉을 보았는데, 이틀을 산속에서 야영해 보았더니 왜 제국이가 그렇게 하였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지요. 양념 불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는데, 한 팀의 젊은 여자들이 우리의 공동취사장으로 들어오더니 자기네들은 맛없는 energy bars나 nuts만 먹는데 도대체 너희들은 무엇을 먹길레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느냐고 물어오더군요. 한국 불고기 양념 냄새는 대부분의 서양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였기에 오늘은 죽을 줄 알았는데, 한 1시간만 잠을 잔 후 또 잠이들지가 않았답니다. 신기한 것은 보통 때 잠을 자지않았다면 엄청 피로감을 느꼈을텐데, 이번 노숙에서는 잠을 이틀연속거의 못자도 피로감이 거의 오지않았다는 것입니다. 너무 신이 나서 그랬었는지 아니면 산속의 산소가 많아서 그랬는지?
6/20/2016 (월요일)
카나다 동계올림픽 종목인 스키경기가 열렸던 Whistler라는 관광지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야영하는 동안에는 세수는 당연히 한 적이 없었고, 양치도 딱 한번만 하였답니다. 그 점심식당에서 우리에게 점심주문을 받았던 여종업원이 아마 우리들 몸에서 나는 악취때문에 많이 괴로웠을 것 입니다. 호텔로 다시 들어와서 샤워를 한 후 일식집에서 숙성회를 즐긴 후 (신선도와 가격이 엄청 좋았어요) 이별의 밤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해서 제2차 노래방에서 1시간 여흥을 가졌답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니까 당연히 박 세규, 이 재모, 조 승식 등의 sponsors 덕에 쌓아올린 서울 노래방에서의 갈고 닭은 노래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였답니다. 창동이는 아마 노래방에 처음 와 본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친구가 마지막 노래 후 “야, 막거리 찬가와 교호를 한번 하자”고 제안해서 카나다 밴쿠버의 어느 구석진 노래방에서 우리의 18번을 목소리 높혀 외쳤답니다. ㅋㅋ, 골통들!
6/21/2016 (화요일)
렌트카도 1시까지 돌려주어야 하고 소생의 San Francisco비행기도 1시에 출발해서 아침일찍 창동이와 미국 국경을 향하였습니다. 당연히 welcome home하고 간단하게 할 줄 알았는데, 작금의 테러사건들 때문에 그런지 국경수비대들이 미국시민들에게도 여러가지 질문을 하더군요. 예를든다면, 카나다에 거주하는 그 친구의 집에서 머물렀는지를 묻더군요. 혹시 모여서 폭탄이라도 만들었을까 묻는 것일까? 우리는 그래서 2박은 산속에서 노숙자생활을 하고 2박은 같은 호텔에서 머물렀다고 대답해주었지요!
렌트가를 돌려주고 공항에서 창동이와 마지막 기념사진을 하나 밖고 헤어졌습니다. 이별의 아쉬움으로 창동이는 눈물이 글썽? ㅋㅋ.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되더군요. 43년만에 처음으로 만나서 하게된 경영72 북미 반창회 back packing은 아름다운 추억을 덤뿍 남겨서 나중까지 반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 3월에는 이런 노가다식 반창회가 아닌 부부동반 반창회를 California의 Palm Spring에서 하기로 예정되어있습니다.
산행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끝까지 읽으셨다면 그 인내심으로 분명히 성공한 삶을 산 72일 것으로 확신합니다. ㅋㅋ






이제서야 댓글이 올라가는군!
ReplyDelete나는 이런 것이 블로그라는 것도 알지못하였단다.
그래서 댓글도 달지않았지.
일년이 지나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웁구나!
창동이는 다시 하고픈 생각이 없지?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된 침낭을 하나 구입해서 추위에 떨지않는 야영을
다시한번 해 보고 싶단다. ㅋㅋㅋ
Anonymous로 선택하였더니 댓글이 올라가서 그렇게 조치를 취하였다.
종걸,
첫번째로 본인이 쓴 글에 댓글 달아주어서 고마워.
Delete심각하게 고민해볼께 하하!
Please remember that 우리 조직에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빠질 때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규율을 말이여!
Delete반갑고, 좋다.
ReplyDelete그냥 좋다.
이런 곳에서 좋은친구들과
생각나는대로, 물흐르듯이,
그냥 지끌이고 싶다.
눈치 보지 않고, 내 자유스러운 영혼이
춤추고 싶다.